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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목)
볼러에서 11시 30분 버스로 사리무 호수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버스에서 내리니 삐끼들이 많다.
우선 잘 곳을 마련해야겠지?
첫번째로 만난 삐끼에게 방값을 물어보니 처음엔 100원 이라고 하더니,
금방 50원 이라고 해서 오케이...
자기차에 태우고 호숫가 길로 들어 가면서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몇사람과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돌려서 나온다.
아마도 제딴에는 호숫가의 좋은 숙소를 구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방이 없었나 보다.
다시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와서 어떤 오토바이 청년과 이야기를 하더니
그 청년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란다.
길이 나빠서 자기차로는 못 간다나...
오토바이 청년의 뒤에 타고 고속도로의 아래 지하통로를 지나서 산비탈의 게르 촌으로 갔다.
거기엔 4~50 동 정도의 게르가 있었는 데 그 중의 한곳에 나를 내려 주었다.
게르는 손님용이고, 게르 주인들은 게르 바로 뒷편의 천막으로 된 집에서 살았다.
내가 묵었던 게르와 주인집(오른 쪽).
내가 도착했을 때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점심식사 중 이었는 데
딱딱한 빵과 양젖(?)으로 식사를 하다가 나에게도 먹으라고 권했다.
기꺼이 먹어두고...
주인집 천막 안에는 가운데 난로가 있어서 난방과 취사를 한다.
연료로 마른 소똥을 쓰는가 하고 봤더니 석탄을 쓴다.
어떤집은 자기네 집 옆에 석탄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석탄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공동으로 쓰는 듯 하다.
주방(?)에는 가스렌지도 있었는데 아마도 비상용 일거라고 생각.
이집 게르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는 데 게르 안은 신접살림 방처럼 깨끗해 보였다.
이불도 예쁘게 개어서 쌓아 놓고, 그 위에 예전 우리네 처럼 커버를 덮었다.
실내에 재털이도 있는 걸로 봐서는 담배를 피워도 되는 듯...
내 숙소.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의무실인지 적십자 깃발이 달린 천막도 있고
상점도 몇개 보인다.
동네의 공동 화장실은 마을 뒷편에 있는데,
우르무치 버스터미널의 화장실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야생화가 피는 무렵이면 사진을 찍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서 호수 안쪽으로 더 들어갈 필요가 있겠는 데
지금은 야생화도 거의 다 져서 이곳으로 만족해야 겠다.
게르마다 태양전지판이 있는데 그것으로 전등을 밝히고
무엇보다도 생활에 필수적인 휴대폰 충전에 쓴다.
내가 말을 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 동안에 마을 입구의 양 도축 장소에서 구경을 했는데
죽은 양의 뒷 발목 부근에 구멍을 내고 입으로 바람을 부어 넣어서
가죽을 분리시키고 벗겨내고, 내장을 꺼내는 등 아주 잠깐 사이에 한마리를 처리했다.
처리가 끝난 양은 통째로 팔거나 나무에 걸어 놓고 손님이 올때마다 잘라서
저울에 달아서 판다.(1 kg에 60원)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열 두어살 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네 아들이 말을 데리고 왔다.
호숫가에서의 영업시간이 끝났는 듯...
한시간을 타는 데 80원 (우리돈 1만 4천원).
다른 친구는 나에게 1시간 백원을 불렀었다.
그런데 말을 어떻게 운전(?)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한시간 후에 오라고 하곤 어디론가 가버렸다.
하긴, 내가 그녀석이 설명하는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니까...
채찍으로 치거나 신발 뒷굼치로 치면 가기는 하는데
배가 고픈 건지 가다가 말고 자꾸 풀을 뜯어 먹는다.
또, 내가 높은 산등성이쪽으로 고삐를 당겨서 조금 가다가 보면 자꾸만 동네쪽으로 틀곤했다.
" 얌마! 이쪽으로 가야지.."
호도협 트레킹을 하던 때에 초입에서 한 구간 말을 탔는데
그때 말이 매우 숨차서 언덕길을 올라갔던 기억때문에 불쌍해서 다시는
말을 안 타려고 했는 데 ...
여기는 초원이라서 한번 달려볼까 했더니 쉽지 않다.
아! 그리고 말을 타는 다른 이유도 있다.
주인집에 하루 50원을 내고 달랑 잠만 자고 가기엔 뭔가 부족한 거 같아서...
아무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말을 타고 언덕까지 갔다 왔다.
가끔은 달리면서...
게르에서 잠 자고... 초원에서 말을 달려 봤으니 나의 이번 여행 목표가 한꺼번에 이루어 진 거다.
저녁 밥을 먹으라고 불러서 가보니 아주머니가 볶음밥을 만들었다.
커다란 후라이팬에 양고기도 조금 들어있는 볶음밥인데 맛도 괜찮았다.
밖에 나갔던 아저씨와 두 아들도 함께 먹었는데(큰 아들은 스무살 쯤), 저녁을 먹고 난 후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오늘 벌어 온 돈을 아주머니께 드린다.
말 장사를 하는 꼬맹이도 400원을 엄마에게 드리고...(우리돈으로 거의 7만원,
제법 많이 번 거 같다).
아저씨와 큰 아들은 다시 아주머니께 얼마만큼의 돈을 받더니 어디론가 나갔다.
아주머니께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 카드하러 갔다고...
이곳의 주민들은 거의 다 카자크인.
대체로 순박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듯 하다.
아주머니가 수박을 한통 사와서 옆집과 나눠먹기도 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이웃간에 경쟁이 심할텐데도 하루종일 어디서 큰 소리 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밤에는 제법 춥지만 낮엔 햇살이 따가운데...
그래도 격식을 다 갖춰서 차려입은 노인이 있어서 함께 사진을...
온화한 인상의 주인 아줌마.
게르 안에는 깨끗하고 두꺼운 이불이 있었지만
혹시나 추울까봐 주인집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다 페트병 두개에 채워서
이불속에 넣고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하나는 이불 밖으로 도망을 갔고...
이 물은 아침에 양치하고 세면하는데 썼다.
세면장?
없다.
그냥 초원이 세면장이다.
거울도 없이 면도까지 하고...
화장실에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초원의 끝 언덕쪽에 산이 있어서 산위에서 경치도 보고 나무숲에서 볼일도 볼 겸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제법 멀다. (약 2 km )
가는 도중에 약간 패인 곳이 있어서...실례...
호수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화장실이 아닐까?
엇저녁에 먹다 남은 볶음밥으로 아침을 먹고
비용을 정산.
숙박 50원, 승마 80원, 식사 20원, 합계 150원을 드리고
이제부터는 필요없게 된 스웨터와 한국에서 가지고 간 작은 크림도 드렸다.
아저씨가 낡은 1 달러짜리를 고이 간직하고 있길래, 새 1달러짜리도 한 장 드리고...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게르에서의 하루를 이렇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