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베리아 횡단열차
철수1
2022. 10. 27. 17:01
2014년 7월 14일.
오후 7시 10분.
모스크바 행 133 열차는 조용히 블라디보스톡 역을 출발했다.
아랫층 침대에는 노인과 할머니 한분이, 그리고 통로쪽 침대에는 아가씨 두명이 위 아래를 차지하고 있다.
대개의 중국 침대차(잉워)는 3층으로 되어서 통로쪽에는 침대가 없는데
이 객차는 통로쪽에도 침대가 있어서 2층으로도 6명을 수용한다.
전혀 말이 안통하니 그냥 인사만 하고 ...
열차안은 그야말로 찜통같았다.
특히 나의 2층 침대옆 창문은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의 창문은 위에 열리는
보조창이 있었다)
그래서 수시로 승무원실 옆의 떨어져 나간 창문가로 가서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러시아 열차 내에서는 흡연도 금지, 술도 마시지 못한다.(나처럼 술, 담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그러나...ㅋㅋ )
가끔씩 경찰들이 순찰을 돈다.
특히 저녁시간에 집중적으로...그러나 식당차에서는 맥주도 판다.
담배를 피우려면 화장실에서 피우거나, 객차 연결 통로에서 경찰이 오는지 살피면서 피워야한다.
때로는 승무원과 함께 눈치를 보면서 피운다.
그래서 가끔씩 장시간 정차하는 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마음놓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연출된다.
열차가 출발을 하면 잠시 후에 승무원이 침대시트와 베개피, 수건을 가져다 준다.
이것들은 내릴 때 다시 승무원에게 반납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사람이 승차하면 새 시트를 가져온다.
한번 시트를 깔면 종착역까지 여러 사람이 쓰게 되는 중국의 열차와는 다르다.
각 객차에는 2 명의 승무원이 있는데 한 사람이 근무하면 교대로 다른 한 사람은 쉰다.
비번인 사람도 가끔은 근무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승무원실 앞에 있는 전기 온수기.
세면기와 수도꼭지. 아랫쪽의 꼭지를 위로 밀어 올려야만 물이 나온다.
통로쪽 침대자리에 앉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차에 타면 제일 먼저 간편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아예 상의를 훌러덩 벗어버리는 남자도 있고, 여자들도 침대시트로 가리고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더우니까 어쩔 수 없다.
나도 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취침.
7월 15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에도 날씨가 나빠서 일몰과 일출은 구경을 못했다.
하바로프스크 역에 정차를 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정차시간이 길어서 역앞 큰길까지 구경을 다녀왔다.
하바롭스크 역 앞.
베라고르스크 라는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아랫층 침대자리표를 못 구했을 경우에, 이 역에서부터 가는 표를 알아보면 될 듯 싶다.
어느 정거장인가에서 내려서 담배를 피우다가 19호차의 북한 노동자 한사람을 만났다.
치타에서 건설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 직원이 아파서 북한으로 보내느라고 우수리스크에 다녀오는 길 이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동네에서 우리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리고보니 나는 출발 할 때 러시아어를 전혀 배우지 않고 키릴문자만 종이에 적어서 가지고 왔는데,
최소한의 필요한 회화는 해야 할텐데...
전에 중국이나 남미에 갈 때는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조금 배워서 갔는데, 이번에는 러시아와 몽골, 중국,
베트남을 가야 하니 4개국어를 한꺼번에 익히기엔 너무 어려운터라 아예 포기를 했던 것.
그나마 중국어는 전에 조금 배워 둔 것이 있어서 그냥 갔는데... 2년전에 조금 배운 게 남아있을리 없지...
블라디보스록으로 오는 배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몇가지 필요한 어휘를 배워올 걸...하는 후회도..
그래서 북한인 이씨에게 부탁해서 러시아어휘 20여 가지를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는 감사의 표시로 담배도 한대 나누어 피우고...
얼핏 보아도 궁색한 모습이 보이기는하지만 상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내 가방안의 식품들을 건네지는
않았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차창밖을 내다 보는 것도 지겹고...
나중에는 자작나무 숲으로 바뀌기는 했어도 그 모습이 그모습...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 덜 지루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났다.
북한인은 가급적 나를 피하는 눈치였고...
초원과 자작나무 숲이 지겹도록 이어진다.
울란우데까지 가는 앞자리의 중년남성과 가끔씩 이야기하고...
뒷자리의 어떤친구는 맥주를 마시다가 경찰에게 걸려서 경찰이 뭔가를 적어갔는데
"이왕 걸린 거 더 먹자" 하는 심정인지 그 후로는 대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7월 16일.
아침 7시에 어느 역에서 20분간 정차.
정차한 역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삶은 계란을 3개 샀는데(개당 10 루블: 320원) 나중에 보니...상했다.
대부분의 역에서는 2~3분 간 정차를 하지만 중요한 역에서는 2~30분씩 정차를 한다.
오래 정차하는 역이 다가오면 승무원이 화장실 문을 잠그니까 알 수 있고, 또 승무원실 복도에
각 역의 도착시간과 정차시간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거기에서 세어보니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58개의 정차역이 있었다.
엇저녁에 승무원에게 양갱 1개를 주었는데, 오늘 담배를 같이 피우면서 하는 말이 "맛이 있더라구"...
그래서 비번인 승무원까지 먹으라고 두개를 더 줬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오케이" 하면서 머리 모양을 손질하느라고 부산을 떨기도...
첫날과 다음날까지는 정확한 시각에 맞추어 열차운행이 되더니 슬슬 지연되기 시작한다.
이유도 모른채 슬슬 가기도하고, 아예 정거장도 아닌 곳에서 정차를 하기도 하고...(신호 대기 중)
11:04 에 도착해야 할 오고차역에 12: 30분이 넘어서 도착.
어디즘 갔을 때 외교통상부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 귀하는 지금 위험지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그 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을..."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나중에 알고보니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에서 추락한 사건때문 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 개울(강은 아니고..)을 따라 쭈욱 달린다.
나중에는 몽골 초원같은 지형에 사이사이 냇물이 아름답다.
열차내의 취객이 나를 자꾸 꼬신다.
같이 술 먹자고...
벌써 2~3일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냈으니 친해졌다고나 할까?
그러나 맨정신으로 마시자고 한다면 나도 같이 마셔 줄 수 있겠지만 이미 술을 마신 사람과 같이 마시는 건
사양해야지.
술을 안 마시겠으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잠시 모델이 되어 줌.
첫번째 큰 철교를 지나며...
통로쪽 자리에 어떤 모자가 탔다.
뚱뎅이 녀석이 와서 애 엄마에게 자꾸 찝적거린다.
별 소득이 없자 자기 자리로 갔다가 한참 후에 또 오기도...
밤 12시가 넘었는데 낮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잠이 안 온다.
이 밤중에 앞자리엔 새로 모녀가 탔다.
울란우데까지 가는 앞자리의 중년이 좋아서 죽으려고 함...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탔으니까...
7월 17일.
아침 9시 이후에는 화장실이 바쁜터라 7시에 모든 볼일을 다 보고...
오늘은 내리는 날...
앞으로 12시간 정도만 버티면 지겨운 여행이 끝날 거다.
간밤에 통로쪽 자리에 탔던 모자는 이미 내리고 없다.
뚱뗑이 젊은 놈이 애 엄마에게 계속 수작을 걸었는데...
여자가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런 친구들의 시달림도 받게 될 듯...
어떤 아주머니의 식사용 빵. 무지하게 크다. 일부를 잘라서 먹고 보자기에 다시 싸서 걸어둔다.
다시 한시간쯤 눈을 붙였다가 9시쯤 아침식사.
전투식량 짬뽕밥을 먹었는데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고추장에서 나는 냄새가 주위 사람들에겐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즉석 떡국이 제일 나을 것 같다.
부피가 좀 문제가 되긴 하는데, 부피가 큰 포장지를 뜯어내고 알맹이만 가지고 다닌다면 문제 해결될 듯.
울란우데에 가까워지자 이제까지 녹색만 보이던 대지에 흙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황폐화 된 것이다.
풀들도 길이가 짧고...가뭄과 염소의 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울란우데는 도시의 범위가 꽤 큰 것 같다.
공장들도 많이 보이고...
그러나, 울란우데 뿐만 아니라 내가 다녀 본 러시아의 여러 지역의 산업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침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활발했을 산업시설들이 노후화되어도 새로운 투자가 없는 것 같고, 일부는 방치되어 녹이 슬어가고 있다.
울란우데 근교.
울란우데에서 앞자리의 중년은 내리고..
울란우데 가운데를 지나는 강물은 혼탁하다.
이 물이 바이칼로 흘러서 들어가는데 바이칼호 물이 맑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바아칼호가 크니까...이 강물은 새발의 피 일까?
울란우데를 떠나서 두번째로 큰 철교를 지난다.
그리고 약 한시간쯤 지나서 드디어 숲 사이로 바이칼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전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씨가 흐려서 물빛도 파랗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중간 정거장에서 훈제생선 장수가 탔다.
작은 것 5마리에 350 루블, 큰 것 3마리에 600 루블(약 18달러)이다.
생각보다 비싸다.
맛은 어떨까?
(이후에 내가 다시 울란우데로 가는 길에 맛을 보게 됨)
훈제 생선.
슬류단카에서 이르쿠츠크 사이에는 높은 산맥이 있다.
슬류단카를 떠나서 산으로 올라가는 기차.
비 내리는 바이칼 호수.
바이칼호를 보려고 낮시간대의 기차를 탔는데 날씨가 거지같다.
이제는 비도 뿌리고...
비가 제법 내리는 가운데 이르쿠츠크 역에는 정시보다 약 30 분 늦게 도착했다.(대략 오후 8시)
우비를 꺼내 입고 역 앞에서 시내로 가는 트램을 탔는데 어떤 사람이 " 한국분이시군요?" 한다.
내 가방 손잡이에 묶어 둔 이-마트 노끈을 보고 한국인 인 걸 알았단다.
( 노끈은 가방을 찾기 쉬우라고 묶어 둔 것)
이 분들에게트램 요금을 물어보니 12 루블... 현금을 차장에게 내면 된다. 거스름돈도 준다.
얼떨결에 내려야 할 정거장을 한 정거장 미리 내려버렸다.
아! 내가 왜 이럴까?
엉뚱한 삽질은 이후로도 계속 되지만...
빗속을 걸어서 예약해 둔 호스텔을 찾아 갔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소식이 없고, 문을 두드려도 소식이 없다.
이럴때가 정말 난감하다.
다시 또 두들겼더니 한참만에 안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주인 아줌마가 나왔다.
원래 정문은 반댓쪽에 있고 내가 두드린 문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후문이라나...
Baikal explorer hostel.
찾아가는 길.
건물 정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뒷편에 정문이 있다.
호스텔은 새로 이사를해서 단장을 했기 때문에 겉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아주 깨끗했다.
아주머니도 아주 친절하시고...
도미토리엔 손님이 나 혼자, 트윈룸에 독일인 커플이 있고...
비를 맞으면서 수퍼에 가서 먹거리 재료를 사 와서 저녁을 먹고 취침.
자다가 보니 쥔 아줌마도 도미토리의 침대에서 주무신다.
신경쓰이네...ㅎㅎ
살림이 별로 넉넉하지 않은 듯 하다.
아주머니는 부업으로 호스텔 한쪽에서 봉제일을 하고 계셨다.
나의 오늘 저녁식사.